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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둔걸 행동에 옮기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책의 구성과 채움방식에 대해 고민했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1. 책의 목차 구성은 그분의 책과 다르게, 서비스의 오픈 절차에 따른다.

> 기획 - 설계 - 디자인 - 개발 - 오픈 - 운영 - 서비스종료

2. 한 챕터의 양은 내가 좋아하는 강박사님의 한 챕터 양을 따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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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글쓰기 연습을 위해 강박사님 한 챕터를 필사? 키사? 여튼 타이핑 쳐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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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호의 FAVOR

결코 사랑일 수 없는 사랑. -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젊은 시절은 뒤죽박죽 혼돈의 시대다. 어린애이면서 어른 흉내를 내려고 하니 혼돈스럽고, 또 마음은 미성숙한데 몸은 지나치게 성숙하니 또 혼돈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의 젊은 시절은 포르노와 사랑이 교차하는 시절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달리 표현하자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무장한 고급 포르노의 시절이 바로 우리의 젊은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인지 포르노인지 모를 이 혼돈의 시절은 인간으로 성숙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성숙한 사람은 이 관문을 피투성이가 된 채로 통과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고, 반대로 아직도 미성숙한 채로 남아 있는 사람은 이 관문을 통과할 문을 못 찾아 지금도 그 성벽을 더듬으며 절망적으로 문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1960년대 혼돈의 시대를 풍미했던 비틀스의 노래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마들렌을 먹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콩브레라는 마을을 회상했던 프루스트처럼, 청년을 훌쩍 넘긴 서른아홈 살 와타나베를 스무 살 전후의 젊은 시절로 되돌려 보낸 것은 함부르크행 비행기 안에서 들렸던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 숲(Norwegian Wood)' 이었다. 어느 남자가 애인의 집에서 묵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렇지만 내일도 함께 있자는 약속을 어기고 그녀는 일하러 가 버렸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방, 그녀가 노르웨이 숲이라고 불렀던 방에 불을 지른다는 내용의 노래다. 얼마나 유치한 남자인가. 사랑을 나누려고 해도 밥은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바로 1960년대의 서정이자 젊은 시절의 유치함이었다.

 나의 회상은 먼저 20년 전 세 명의 젊은 남녀 사이에 펼쳐졌던 애매한 관계로 되돌아간다. 와타나베라는 이름의 나, 나의 친구ㅠ 기즈키, 그리고 기즈키의 여자친구 나오코가 바로 그들이다. 고급 포르노라는 혼돈의 시절 그 관문에서 가장 먼저 좌초한것은 기즈키였다. 기즈키는 열일곱 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기즈키가 자살하는 날에도 여느 때처럼 함께 당구를 쳤던 나도, 그리고 기즈키와 한몸처럼 지냈던 나오코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기즈키가 와타나베를 우정의 대상으로, 혹은 나오코르르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진짜 친구가 있다면 친구르 ㄹ두고 홀로 세상을 떠날 수도 없고, 진짜 애인이 있다면 애인에게 슬픔을 안기고 자살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러니 친구라고 믿고 있던 와타나베나 애인이라고 믿고 있던 나오코, 남겨진 이 두사람에게 기즈키의 자살은 하나의 어두운 신비로 남게된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정말 '나'는 기즈키를 친구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나오코는 기즈키를 애인으로 받아들였던 것일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법이다. 사실 기즈키에게 와타나베는외양만 친구였고, 나오코는 외양만 애인이었던 것처럼, '나' 또한 기즈키를 친구라고 믿고 있었고 나오코도 기즈키를 애인이라고 믿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것이 바로 젊은 시절의 우정과 사랑이 가진 특성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친구나 애인보다는 자신을 더 아끼니까 말이다. 남겨진 두 사람이 어느 날 서로의 몸을 격렬하게 탐하는 당혹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나오코를 안았다. 올바른 행동이었는지 아닌지 난 모른다. 이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도 영원히 모를 것 같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지 ㅇ낳고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오코는 흥분항 상태였고, 혼란에 빠졌고, 나를 통해 그것을 가라앉히고싶어 했다. 나는 불을 끄고 천천히 부드럽게 그녀의 옷을 벗기고 내 옷도 벗었다. 그러고 나서 서로를 안았다. 비내리는 따스한 밤, 우리는 벌거벗었지만 취를 느끼지 않았다. 나와 나오코는 말없이 서로의 몸을 더듬었다 나는 그녀에케 입을 맞추고, 손으로 부드럽게 유방을 감쌌다. 나오코는 딱딱해진 나의 페니스를 잡았다. 그녀의 질이 따스한 열기를 띠고 젖은 채 나를 원했다. 그래도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심하게 아파했다. 처음이냐고 물었더니 나오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줄곧 기즈키와 나오코가 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페니스를 깊이 밀어 넣은 채 가만히 오래도록 그녀를 안고 있었다. 나오코가 안정을 되찾은 것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움직이다가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사정했다. 마지막에 이르러 나오코는 내 몸을 꼭 끌어안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 보았던 오르가슴 소리 가운데에서 가장 애달팠다.

 나오코는 격하게 눈물을 떨구었고, 와타나베는 그런 그녀를 안아 주게 된 것이다. 나오코는 죽은 기즈키가 그리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애인이 죽었을 때 가장 절절한 것은 바로 그를 만질 수 없다는 무서운 현실에 직면했을 때 아닌가. 더군다나 기즈키와 성숙한 남녀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랑 행위를 이미 어린 시절부터 했었기 때문에, 그녀의 성적인 결여감은 더 컸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나'에게 안기면서, 마침내 나오코는 자신의 성욕을 내게 폭발시킨다. 사실 이 순간 두 사람의 뇌리에는 자살로 세상을 떠난 친구이자 애인인 기즈키는 존재할 수조차 없었다. 이렇게 격정적인 관계를 끝낸 순간, 두 사람이 충분히 성숙했다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나오코에게 자살한 기즈키는 성적인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내가 기즈키와 만나려고 했던 것도 성욕 때문이었다는 진실을.

 애인이 죽은 뒤에 애인의 친구를 상대로 섹스를 즐기는 것, 친구의 애인과 섹스를 즐기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성욕이나 섹스에 대한 동경이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와타나베와 기즈키는 이런 엄연한 현실을 은페하려고 한다. 나오코라는 여자를 사랑해서 섹스를 했다고 믿어 버리는 '나'는 이 경우 순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경우는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나'와의 섹스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나오코는 와타나베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자신은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는 식으로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게 된다. 물론 애인을 잃은여자의 불완전성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그래서 나중에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난 나에 대한 네 호의를 느끼고, 그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그런 기분을 솔직히 네게 전할 따름이다. 아마도 지금 나는 그런 호의가 절실히 필요해."

 지금 나오코는 와타나베와의 섹스를 호의의 문제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친구의 애인이 느끼는 불완전성, 그 결핍을 잠시라도 채워 주려는 '나'의 호의를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성욕 때문이 아니라 호의다. 스피노자도 말했던 적이 있다.

  호의(favor)란 타인에게 친절을 베푼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왼쪽페이지에 그림과 요약된 글귀를 넣어서 한 페이지를 추가했지만 이부분은 추후 넣는것으로 생각하고 나는 무시한다)

 여기서 타인이란 내가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내가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한 호의라는 감정의 정체이다. 지금 나오코는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호의라는 감정을 끌어들이고 있다. '나'는 자살한 친구를 너무나 아꼈고, 당연히 그에게 친절을 베푼 여자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오코는 와타나베와의 섹스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즉 친구의 애인을 위로하려는 '나'의 호의를 받아들였기에, 나와 섹스를 했다는 논리다. 여기서 우리는 나오코의 정신이 심하게분열되리라는 불길한 전망에 이르게 된다. 나오코가 자살한 기즈키를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고, 호의를 받아들이느라 와타나베오 섹스를 나누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냥 세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은 미성숙하고 유치하기 까지 한 성욕이었을 뿐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면 나오코는 정신병원에 갇혀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욕을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포장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이걸 몰랐던 것, 그것이 젊은 시절 '나'나 나오코, 그리고 기즈키가 가진 미성숙의 정체였던 셈이다. 안타깝게도서른아홉 살 주인공 와타나베뿐만 아니라 우리도 섹스와 사랑에 관련된 진실을 모르고, 아름답고 격조 높은 고급 포르노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그래서 '노르웨이 숲'이라는 소설이 우리에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섹스에 대한 갈망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포장하면서 말이다.

소개된 작가 소개 - 무라카미 하루키 (1949-)

와세다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였고, 재즈 카페를 운영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현대인의 허무와 상실감을 담은 '노르웨이 숲'(1987)은 세계적으로도 '하루키 붐'을 일으켰는데, 미국에서는 하루키 판 '호밀밭의 파수꾼'으로도 불린다. 2008년에 프란츠 카프카 상, 2011년에 카탈로니아 국제상 등을 수상하였고,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노르웨이의 숲'은 소중한 사람을 잃고 방황하는 두 남녀를 통해 저마다 상실의 아픔을 이겨 나가는 젊은이들의 성장통을 다룬 소설이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기즈키의 죽음으로 인해 내 젊음의 기능 일부가 완전하고도 영원히 망가져 버린 것 같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뚜렷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지, 그것은 나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다."
나오코의 요양원 룸메이트는 도피의 세계를 찾는 영혼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분명 자신의 뒤틀린 부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건지도 몰라, 그래서 그 뒤틀림이 불러일으키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고뇌를 자기 내면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여기 들어온거야. 여기 있는 한 우리는 남을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고, 남에게 아픔을 당하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뒤틀림'이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이런 점에서 외부 세계와 이곳은 완전히 달라. 외부 세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뒤틀렸음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세계에서는 뒤틀림이야 말로 존재의 조건이야. 인디언이 머리에 자기 부족을 상징하는 깃털을 꽂듯이 우리는 뒤틀림을 끌어안고 있어.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용히 사는 거야.

철학자의 어드바이스

자신의 애인에게 친절을 배푸는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바로 호의라는 감정이다. 그러니까 호의라는 감정 구도에는 최소한 세 사람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친구가 개입하는 식이다. 구체적으로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 혹은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누구든지 애인과 우정을 맺고 있는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기 마련이다. 참 고마운 사람 아닌가, 애인을 아껴 주는 사람이니 말이다. 애인의 친구도 처음에는 아무런 의도 없이 내 호의에 대해 호의로 응대해 준다. 그의 입장에서도 친구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어떻게 호의를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애인을 사이에 두고 두 남녀는 호의를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내가 애인과 소원해질 때 발생한다. 나나 내 애인은 잠시의 냉각기라고 생각할 뿐, 그렇다고 헤어질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이런 냉각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애인의 친구와는 계속 호의를 주고받게 된다. 애인과 소원해졌을 뿐 애인의 친구와 맺은 관계에서는 달리 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살짝 심드렁해진 애인보다는 애인의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다. 드디어 심각한 본말전도가 벌어진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함께 있으면 기쁜 감정이 들 때 그게 바로 사랑 아닌가. 이제 나와 애인의 친구는 진실을 직시하기만 하면 된다.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호의는 무척 위험한 감정이다. 왜일까? 첫째, 호의는 애인의 친구에 대한 사랑이기에 그 사람에 대해 무장 해제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애인과 소원해질 때 서로 주고받던 호의는 금방 애인을 배제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가요 가사처럼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는 잘못된 만남은 바로 이 호의라는 감정에서 싹트는 법이다. 그러니 왠만하면 자신의 애인을 친구에게 소개시켜 주거나 셋이 함께하는 멍청한 짓은 저지르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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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 표지 1p + 첫장 반절 여백포함 8p + 그림과 설명 1p = 총 10페이지

이런 소단원이 총 48개. 대충 어림잡아 480페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렇게되는구나. 이제 스크롤을 올려서 양이 얼마나되는지 느낌을 보도록 하자.

 

대충 13-14줄에 한장. 한 단락은 6줄정도 12단락.

6줄씩 12단락. 음...이정도구나.

내가 평소에 블로그에 쓰는 단락의 양을 한번 재보자.

 

대충 평소에 길게 설명하고싶을때 느낌으로 쭉 쓰는걸 하루에 두세개정도 쓰면 되겠구나

글을 잘 쓰려면 목차 안에 세부목차 등 잘 잡아야되겠다.

다음엔 대략 목차를 잡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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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할 책의 분량을 보니 

*판형 : 160*220
*페이지 : 약 240

240페이지면..

10페이지짜리 24주제음..

24개 채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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