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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에 해당되는 글 4건
2013.01.11 23:30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왜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해주었나

이 영화 장면들 중 제일 가슴깊이 남은 장면이 제목처럼 전도연이 감옥에 찾아갔는데 유괴범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나는 기독교를 믿지 않으며 어떠한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 나약한 그녀가 기댈 곳은 유일한 구원자 예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이 장면에서 그녀는 커다란 배신감을 선물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막연하게 기댈 수 있는 신이 그렇게 시켰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신은 너무도 공평한 나머지 범죄자마저 용서해주고 말았다. 그녀에게 이 순간 신은 진실을 찾아줄 것이라 찾아간 법원에서 억울한 판결을 해준 판사 같은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마지막장면 그녀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어서 미용실에 간다. 그곳에서 준을 잃었을 때 만난 여학생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준을 잃어버린 슬픔에서 헤어날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스스로 자기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그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머리카락이 자라나듯이 준을 잃어버린 기억과 여러 가지 행복했던 기억들은 자라날 테지만 스스로 그 기억을 지워나가려는 그녀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잘라달라 부탁했다가 자신이 스스로 자르는 모습은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송강호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그녀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는 전도연이 준을 납치했단 연락을 받고 힘들어할 때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 순간 그는 노래방기기를 켜놓고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전도연은 그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사람은 결국 홀로남게 된다.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들에는 항상 곁에 사람들이 있어서 이 장면을 빛내준다. 하지만 정말 힘겹고 절망적인 순간 인간은 혼자이다. 홀로 남아 고통을 겪는 당사자도 힘들겠지만 중요한 순간 함께 해 주지 못한 주변인의 자책감도 상당하다. 그가 그 순간 곁에 없었던 것은 인간관계의 이런 딜레마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신애의 삶에 있어서 아들 준과 함께 했던 시간, 특히 그를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워 했던 기간은 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녀가 살아갈 대부분의 시간은 사실 준 없이 살아가야만 했을 순간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닥친 순간의 슬픔은 남은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도 그러하다. 연인과의 헤어짐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 보고싶은 사람을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많은 이들을 술마시게 하고 울게 하고, 심지어 자살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춘향전에서 춘향이는 그와 함께한 찰나의 순간 때문에 평생을 순결을 지키며 살아온다. 사람은 미련하게도 그런 동물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이것 또한 냉정함을 잃은 사람의 한가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최근 본 영화 남영동 1985를 보면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영화속 인물로 표현된다. 실제 인물 이근안이 투옥생활 중 회개하고 목사가 되어 자신의 삶은 나라를 위한 삶이었다고 포장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목사자격을 박탈당하고 책을 출판할 계획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왜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가? 그리스도교의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이겠지만 이는 밀양이나 이근안 같은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기독교의 이런 딜레마를 잘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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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23:28



종두를 성폭행범으로 감옥에 넣은 것은 누구인가.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종두는 성폭행범이 아니고 진정으로 공주를 사랑했던 남자인 것을 알 것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종두는 영화 속 세상처럼 꼼짝못하고 성폭행범으로 몰려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오해들이 당연하게 일어나야하는지 생각 해 보았다.

종두를 성폭행범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나의 잘못된 선입견이다. 한번도 사회적 약자인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져 본 적 없고, 그들이 어떤생각을 하는지 어떤 욕구를 갖고 살아가는지 알아본 적 없기 때문에 그들에 대하여 아는 것이 사실 없다. 막연하게나마 사회적으로 접했던 사건사고 소식 중 성폭행당한 장애여성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그 프레임속에 종두와 공주를 넣고 판단한 것이다. 내가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낄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면 이러한 오해는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가 나에게 던져준 가장 큰 메시지는 내가 1인칭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삶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주가 오아시스를 꿈꾸며 긴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그녀에게도 꿈이 생겼고 그것을 함께 이룰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전문적으로 그들의 삶을 공부할 테지만 직접 맞대고 살아갈 우리들에게도 그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감옥 에서 갓 출소한 종두는 가족들에게 냉대 받는다. 그의 순수한 마음은 가족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두가 감옥을 간 것은 그의 형을 대신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형은 그래서 종두의 존재를 잊고 싶기도 하고 죄책감에 그를 챙겨야하기도 하는 이중적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종두가 냉대받는 현실은 누가 만든것인가. 추운겨울 여름옷차림으로 도심을 서성거리는 그는 왜 화조차 내지 않는 것일까. 바보같은 종두의 모습은 무식하게 순수한 요즘사람들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뇌성마비 공주는 가족들에게 하나의 짐 취급을 받는다. 나라의 감시가 있을 때만 집으로 데려와서 숙제검사하듯이 확인을 받아 두고는 다시 혼자 지내도록 방치해버린다. 그녀를 위해 가족들이 한 일이라고는 옆집 사람들에게 20만원을 주고 돌봐달라고 시킨 것 뿐이다. 그녀는 집안에서 거울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손짓만으로 밝은 빛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빛을 동경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갖혀있는 그녀의 삶을 열어준 유일한 존재가 종두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주에게 꽃을 선물하고 나서 그녀의 몸을 탐하는 종두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분노했다. 색안경을 쓴 나의 눈에는 그저 겁탈당하는 한 장애여성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사랑은 다른사람들 눈에 좋게 보이기 힘들었다. 휠체어에 태워 종두의 가족들에게 데려가자 그녀는 같이 사진조차 찍지 못하는 취급을 받는다. 보호받고 지켜져야 할 사랑을 나누는 시간은 공주의 가족들에게 침범당하고 범죄자취급을 받게 된다. 그들이 서로를 찾은 것은 더럽고 각박한 세상속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을 오아시스를 찾은 것과 같아서 오아시스라는 제목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영화포스터에 사랑! 해보셨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우리들중 대부분은 순수한 사랑은커녕 어줍잖은 맞선 놀이를 대학에 와서부터 시작한다. 학벌 집안 명품가방들로 서로를 판단하는 자본주의식 키재기 놀이를 하는 우리들에게 종두와 공주의 사랑은 정말 순수하다는 점에서 부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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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23:27



 

영호의 삶은 어디서부터 꼬였는가.

기찻길에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울부짖는 그를 보며 어떤 사연이 그를 저렇게 슬프게 했는지 궁금했다. 사진기 씬에서 보이는 그를 보며 세상에 불만을 갖고서는 영호가 무능력해보이고 한심해보였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는 그 문제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찾아 복수하려는 마음이 무책임해보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영호가 죽어가는 순임에게 박하사탕을 들고 찾아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자신의 잃어버린 순수함을 찾고자 하는 장면으로 보였다. 그는 군대에서 끌려가던 그날 밤 박하사탕을 잃어버리면서 그의 순수함도 같이 날아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슴이 먹먹하다. 이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영호 외에도 수없이 많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 시군 생활하셨던 나의 아버지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수없이 비관해왔을 것이며 슬퍼하고 죄책감을 등에 지고 평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단지 명령을 받고 수행한 병사일 뿐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이 무엇인지 인지한 때부터 혼란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최근 개봉한 26년 이란 영화를 보면 전두환을 보좌하는 경호실장이 독백하는 장면에서 비슷한 감정 선을 볼 수 있다. 그에게 각하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올바르고 착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순수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영호는 순임으로 보였던 그 여학생을 죽임으로서 자신을 어둡고 캄캄한 방안에 가두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건은 영호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결국엔 그의 주변에서 그와 삶을 공유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의 피해자일 것이다. 순임은 이유도 모른 채 그에게서 멀어지는 자신을 보며 평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임종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그의 마음이 떠난 이유를 궁금해 했을 것이다. 또한 홍자도 치유할 수 없는 영호의 상처를 보며 깊은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도 자신에게 정을 주지 않는 영호를 보며 그녀도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녀가 바람을 운 것도 이상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결국 영호이고 더 깊이 들어가면 그의 순수함을 빼앗아버린 대한민국 전 대통령이다. 이들의 상처는 결국 치유되지 못한다.

영화의 종반으로 갈수록 관객의 마음은 더욱 먹먹해져 간다. 울부짖는 영호가 살아온 세월은 나약한 그를 비극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다.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결국엔 그를 깊숙이 이해하고 연민하게 되었다. 영호가 잠복근무를 하면서 잠깐 쉬라는 지시를 받고는 카페 여종업원과 밤을 같이 보내는 장면이 있었다. 이 부분에서 영호는 그의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침 여섯시에 해장국을 만나러 가서 여종업원을 만났다면 그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그는 순임에 대한 마음을 그녀에게 보이고 충분히 위로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차를 타고 가면서 잡아온 학생의 피를 닦아주는 장면이 참 슬펐다.

많은 사람들은 울부짖는 설경구의 모습을 통해 이 영화를 기억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장면을 떠올릴 것 같다. 이 영화의 검색 키워드 중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있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순수함을 잃고 살아온 5.18 민주화항쟁의 피해자 반대편에서 살아온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통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죽은 여고생을 안고 우는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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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23:24



 

막동이는 왜 배태곤을 위해 김양길을 죽였는가.

갓 전역한 막동이의 모습을 보며 저시절 20대나 우리시대 20대나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 지금 20대들만 대입에 찌들고 성적에 치여살며 꿈없이 살아온 줄 알았는데 90년대 막동이도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은 꿈없는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에게 주어진 미애 라는 모티브가 그의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것처럼 우리도 작은 사건들로 인생이 휩쓸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스토리에 몰입하게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막동이는 배태곤에게 어떠한 감정을 느꼈을지 생각해본다. 배태곤은 스물여섯 막동이가 보기에 모든 것을 가진 롤모델이었을 것이다. 그가좋아하는 여자, , 권력 게다가 배태곤은 막동이를 친밀하게 대해준다. 막동이는 의지할 곳 없는 서울에서 하나의 동아줄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 이라 생각한다.

막동이는 왜 김양길을 죽였을까. 그는 배태곤의 여자인 미애를 품었다. 그는 행복감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배태곤이 그 사실을 알아챌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미애를 믿었을 것 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배태곤은 그의 부하들을 부릴 때 권위로 가득 찬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작 이전 그의 보스인 김양길앞에서 심지어는 그의 부하들 앞에서도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이런 모습뒤에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묻어난다. 싸워서 이길 수 도 있는데 왜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일지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아마 김양길이 배태곤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것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비굴했던 과거를 지울 수 없는 그의 모습은 나중에 그의 염원을 대신 이뤄준 막동이에게 죽음을 선물하는 모습도 예측가능하게 해준다.

이 영화는 청룡영화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내가보기에는 별로 평가하고싶은 내용이 없다. 스토리라인으로보면 20대청년이 보스의 여인을 사랑하게되고 여자를 품고나서는 보스에게 버림받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꿈없는 20대 청년의 삶이 비루하게 끝난다는 점을 표현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게 비평할 만한 점을 찾지 못했다.

이창동감독이 초록물고기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했는지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한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두 남자의 심적 갈등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막동이를 통해 우리 젊은이들의 갈대같이 휘날리는 나약한모습을 표현한 것일것이라고 생각한다. 계란장수 형과 교통법규를 위반했다가 경찰과 확성기를 대고 말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면 이나라가 부패했다는 점을 표현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부패한 대한민국에서 막동이는 그의 살길을 찾기위해 서울에 상경했고 우연찮게 배태곤과의 연이 생겨 근처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다. 많은 우리 아버지들이 이런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을 것이다. 지인을 통해 사회생활을 이어나가는 우리네 학연, 지연을 바탕으로 한 사회구조가 여기서 드러난다. 연줄이 닿으면 그동안의 노력은 한 단계 밑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송강호와의 다툼에서 볼 수 있었다.

마지막장면에서 심혜진은 사진 속 나무를 기억해내며 식당이 막동이네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임을 눈치채고는 고통스러워한다. 그녀가 이렇게도 고통스러워 한 이유는 단지 살인을 방조했다는 죄책감이 아닌 젊음을 팔아 나라를 일으킨 우리나라 청년들에대한 연민을 표현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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