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LEEEJONG (165)
IT (53)
주관적평가 (31)
창작공간 (80)
109,971 Visitors up to today!
Today 5 hit, Yesterday 57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송강호'에 해당되는 글 3건
2013.01.11 23:39



자본주의 노예-피에 대한 갈증. 곧 돈의 노예

영화속 상징물들이 현실세계의 무엇을 뜻하는지 처음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교수님이 주신 하얀벽=백악관이라는 힌트를 들었기 때문에 유추 할 수 있었던 내용이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뿌듯했다. 영화를 구성한 감독에 대한 대단하다는 존경의 마음을 느꼈으며 남들은 못하는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뿌듯함도 느꼈다.

신부 현상현은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임마누엘 연수원에 가게 된다. 뜻하지 않게 그곳에서 뱀파이어가 되게 되고 이는 영화의 진행에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현상현은 미국 혹은 자본주의를 뜻한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는 산업화와 함께 피할 수 없이 다가온 제도이다. 결코 나쁜 의도를 시작한 제도가 아니지만 뱀파이어가 된 신부는 다른 사람의 돈을 뺏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듯이 다른 사람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그는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죽이지 않고 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갈구 해 보지만 그에게 그런 방법을 구하기란 힘들다. 마치 정직하게는 부를 축적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처럼 말이다.

태주는 어렸을 때 부터 상현을 원해왔다고 한다. 무능력한 강우대신 그녀는 신부인 현상현을 흠모하게 되고 그와 몸을 섞는 사이가 되고 만다. 그리고 나서는 상현이 다른사람의 피 없이는 살 수 없는 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태주는 변해가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막연히 미국을 동경해 받아들이지만 자본주의의 잔인함을 보고나서는 그를 떼어놓고 싶어도 떼어놓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다 결국엔 자신도 자본주의의 하수인이 되어 다른사람의 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엄마와 태주는 일본풍의 양식에 건물에서 한국 고전의상점을 하면서 지낸다. 엄마와 강우는 보드카로 상징되는 러시아와 마작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도움을 받아가며 살아간다. 영화초반 엄마는 신부에게 찾아와서는 강우가 암에 걸렸다고 기도해달라고 찾아온다. 이 모습은 병약한 해방직후 우리나라가 미국에 도움을 청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나중에 태주와 신부의 공격으로 물에 빠져 죽고 나서 엄마는 강우도 수영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대사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외치는 것 같아서 굉장히 안타까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스스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흥분하면서 감상하였다. 영화의 결말은 자본주의 흡혈귀들이 스스로 자살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박찬욱 감독은 우리나라의 이어진 미래를 복수 3부작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암울하게도 이어져오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고 보니 이 영화가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수업을 듣는 내내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무지한 내가 부끄러웠다. 배경지식을 갖고 영화를 감상해보니 암울한 우리나라 역사를 되새김질 하며 알아 갈 수 있어서 좋았다.

해방직후 우리나라는 열강들의 입김속에 스스로 무언가를 이룰 틈도 없이 나라가 두동강 났으며 이 역사는 지금까지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의 피해자로 착취당해왔으며 그 내용을 학습해버리고는 태주가 스스로 허벅지를 찌르듯 스스로를 학대하며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있다. 이 영화는 이런 현실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물음표를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신부는 엄마에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핸드폰을 손에 쥐어주고 태주와 함께 동반 자살 한다. 남겨진 우리는 어떻게 자본주의 폐단을 해결하며 살아가야할지 고민해야겠다.

'주관적평가 > 까칠한영화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국열차 자본주의를 꼬집다 - byLJ  (0) 2013.08.30
인생을 바꾼 이 영화  (0) 2013.01.11
영화 박쥐(THIRST)_byLJ  (0) 2013.01.11
친절한 금자씨_byLJ  (0) 2013.01.11
올드보이_byLJ  (0) 2013.01.11
복수는 나의 것_byLJ  (0) 2013.01.11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3.01.11 23:34


 

무었이 남았는가

복수하는 류를 보며 말못하는 그가 그동안 느껴왔을 감정들을 공감했으며 그의 행동들이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을 충분히 보았다. 그를 가장 간단한 보통명사로 표현하자면 장애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그는 사회적 약자이며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사회적 짐은 사회가 짊어져도 무거울 만큼 큰 것들이다. 영화의 첫장면에서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이 나중에 잔인하게 돌변하는 그의 모습과 대비되며 슬픈 감정을 느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초점이 약간씩 벗어나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냈고, 결국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뿐만아니라 그는 의도치 않은 악행을 하게되며 스스로 말했던 착한 모습을 지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복수는 내가 항상 꿈꿔왔지만 한번도 실행해보지 못한 행동이고 잔인하고 처절하게 복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영화였다. 피해를 받아봤던 사람은 영화 속 장면 같은 복수를 생각해 보았을 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 나는 나를 괴롭혔던 친구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 사람의 증오감은 겉에서 준 충격이 어떠한 크기인가 보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키워내는 방향으로 자라나게 된다. 류와 사장은 겹쳐지는 악재 속에서 스트레스를 증오심으로 발전시켰다. 내가 상상해온 방법보다 몇 배는 잔인하게 자신의 복수를 해낸다.

우연히 시작된 비극, 상상보다 거대한 파국. 많은 사람들이 우연한 사건으로 서로를 싫어하게 되며 이 고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되기 보다는 더욱 거세지고 급격하게 발전하게 된다. 주변에 이런 경쟁구도는 많이 보인다. 동아시아 일대에서의 일본과의 반감, 엘 클라시코 더비 등 여러 가지 예가 있다. 한쪽이 복수 혹은 승리, 탈환에 성공하면 다른 한 쪽은 분개하며 또 다른 복수를 꿈꾼다. 류가 배두나의 죽음을 보고 사장의 집 앞에 주차된 차에서 잠복하는 장면과 사장이 류의 집 안에서 기다리는 장면은 동시에 진행된다. 서로에 대한 증오가 표현되는 이 장면이 긴장감있고 좋았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너무도 잔인한 표현들 때문에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보통사람을 정리해고해도 사실 그 가족의 삶은 반절이상 파탄나게 된다. 심지어 장애인을 해고하는 현실이 내가사는 이 세상에도 존재한다는게 기분이 나빴다. 그런 궁핍한 청년이 손내밀 수 있는 곳이 장기매매라는 점이 또 기분이 나빴다. 지금도 터미널 화장실에만 가도 저런 스티커를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그런사람을 등쳐먹는 밀매업자들을 보고 기분이 안좋았다. 정말 이 사회에 홍길동이나 임꺽정같은 의적을 주제로 한 소설이 흥행할 수 있는 이유를 알게되었다. 못살고 궁핍한 사람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굉장히 많고 이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아간다는 점이 너무 슬프고 화났다.

이 영화는 박찬욱감독의 복수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라고 위키백과사전에서 보았다. 올드보이 와 친절한 금자씨에서 나올 또다른 복수들과 비교해봐야겠지만 내가 본 류와 사장의 복수는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이 먼저 드는 복수였다. 왜냐하면 복수를 통해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피해자들만 남았기 때문이다. 돈 없으면 자기 장기를 팔아서 돈을 구하는 세상, 직장이 없으면 사지로 내몰려 온 가족들과 함께 동반자살하는 세상에 살고있다는 것이 느껴져 참 슬픈 영화였다.

'주관적평가 > 까칠한영화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절한 금자씨_byLJ  (0) 2013.01.11
올드보이_byLJ  (0) 2013.01.11
복수는 나의 것_byLJ  (0) 2013.01.11
영화 똥파리_byLJ  (0) 2013.01.11
밀양_byLJ  (0) 2013.01.11
오아시스_byLJ  (0) 2013.01.11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3.01.11 23:30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왜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해주었나

이 영화 장면들 중 제일 가슴깊이 남은 장면이 제목처럼 전도연이 감옥에 찾아갔는데 유괴범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나는 기독교를 믿지 않으며 어떠한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 나약한 그녀가 기댈 곳은 유일한 구원자 예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이 장면에서 그녀는 커다란 배신감을 선물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그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막연하게 기댈 수 있는 신이 그렇게 시켰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신은 너무도 공평한 나머지 범죄자마저 용서해주고 말았다. 그녀에게 이 순간 신은 진실을 찾아줄 것이라 찾아간 법원에서 억울한 판결을 해준 판사 같은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마지막장면 그녀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어서 미용실에 간다. 그곳에서 준을 잃었을 때 만난 여학생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준을 잃어버린 슬픔에서 헤어날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스스로 자기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그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머리카락이 자라나듯이 준을 잃어버린 기억과 여러 가지 행복했던 기억들은 자라날 테지만 스스로 그 기억을 지워나가려는 그녀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잘라달라 부탁했다가 자신이 스스로 자르는 모습은 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 속 송강호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그녀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는 전도연이 준을 납치했단 연락을 받고 힘들어할 때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 순간 그는 노래방기기를 켜놓고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전도연은 그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사람은 결국 홀로남게 된다.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들에는 항상 곁에 사람들이 있어서 이 장면을 빛내준다. 하지만 정말 힘겹고 절망적인 순간 인간은 혼자이다. 홀로 남아 고통을 겪는 당사자도 힘들겠지만 중요한 순간 함께 해 주지 못한 주변인의 자책감도 상당하다. 그가 그 순간 곁에 없었던 것은 인간관계의 이런 딜레마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신애의 삶에 있어서 아들 준과 함께 했던 시간, 특히 그를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워 했던 기간은 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녀가 살아갈 대부분의 시간은 사실 준 없이 살아가야만 했을 순간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닥친 순간의 슬픔은 남은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도 그러하다. 연인과의 헤어짐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 보고싶은 사람을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많은 이들을 술마시게 하고 울게 하고, 심지어 자살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춘향전에서 춘향이는 그와 함께한 찰나의 순간 때문에 평생을 순결을 지키며 살아온다. 사람은 미련하게도 그런 동물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이것 또한 냉정함을 잃은 사람의 한가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최근 본 영화 남영동 1985를 보면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영화속 인물로 표현된다. 실제 인물 이근안이 투옥생활 중 회개하고 목사가 되어 자신의 삶은 나라를 위한 삶이었다고 포장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목사자격을 박탈당하고 책을 출판할 계획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왜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가? 그리스도교의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이겠지만 이는 밀양이나 이근안 같은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기독교의 이런 딜레마를 잘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주관적평가 > 까칠한영화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수는 나의 것_byLJ  (0) 2013.01.11
영화 똥파리_byLJ  (0) 2013.01.11
밀양_byLJ  (0) 2013.01.11
오아시스_byLJ  (0) 2013.01.11
박하사탕_byLJ  (0) 2013.01.11
초록물고기_byLJ  (0) 2013.01.11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prev"" #1 next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