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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의 삶은 어디서부터 꼬였는가.

기찻길에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울부짖는 그를 보며 어떤 사연이 그를 저렇게 슬프게 했는지 궁금했다. 사진기 씬에서 보이는 그를 보며 세상에 불만을 갖고서는 영호가 무능력해보이고 한심해보였다.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는 그 문제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찾아 복수하려는 마음이 무책임해보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영호가 죽어가는 순임에게 박하사탕을 들고 찾아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자신의 잃어버린 순수함을 찾고자 하는 장면으로 보였다. 그는 군대에서 끌려가던 그날 밤 박하사탕을 잃어버리면서 그의 순수함도 같이 날아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슴이 먹먹하다. 이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영호 외에도 수없이 많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 시군 생활하셨던 나의 아버지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수없이 비관해왔을 것이며 슬퍼하고 죄책감을 등에 지고 평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단지 명령을 받고 수행한 병사일 뿐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이 무엇인지 인지한 때부터 혼란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최근 개봉한 26년 이란 영화를 보면 전두환을 보좌하는 경호실장이 독백하는 장면에서 비슷한 감정 선을 볼 수 있다. 그에게 각하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올바르고 착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순수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영호는 순임으로 보였던 그 여학생을 죽임으로서 자신을 어둡고 캄캄한 방안에 가두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건은 영호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결국엔 그의 주변에서 그와 삶을 공유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의 피해자일 것이다. 순임은 이유도 모른 채 그에게서 멀어지는 자신을 보며 평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임종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그의 마음이 떠난 이유를 궁금해 했을 것이다. 또한 홍자도 치유할 수 없는 영호의 상처를 보며 깊은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도 자신에게 정을 주지 않는 영호를 보며 그녀도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녀가 바람을 운 것도 이상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결국 영호이고 더 깊이 들어가면 그의 순수함을 빼앗아버린 대한민국 전 대통령이다. 이들의 상처는 결국 치유되지 못한다.

영화의 종반으로 갈수록 관객의 마음은 더욱 먹먹해져 간다. 울부짖는 영호가 살아온 세월은 나약한 그를 비극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다.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결국엔 그를 깊숙이 이해하고 연민하게 되었다. 영호가 잠복근무를 하면서 잠깐 쉬라는 지시를 받고는 카페 여종업원과 밤을 같이 보내는 장면이 있었다. 이 부분에서 영호는 그의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침 여섯시에 해장국을 만나러 가서 여종업원을 만났다면 그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그는 순임에 대한 마음을 그녀에게 보이고 충분히 위로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차를 타고 가면서 잡아온 학생의 피를 닦아주는 장면이 참 슬펐다.

많은 사람들은 울부짖는 설경구의 모습을 통해 이 영화를 기억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장면을 떠올릴 것 같다. 이 영화의 검색 키워드 중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있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순수함을 잃고 살아온 5.18 민주화항쟁의 피해자 반대편에서 살아온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통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죽은 여고생을 안고 우는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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