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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이 무서운가.

강도가 했던 행동들을 보며 미루어 짐작할 때 사람은 무엇을 가장 고통스러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강도 자신은 30년간 살아오면서 외로움에 익숙해 왔던 것으로 보였다. 그는 청계천 공구상가 채무자들에게는 악마였지만 스스로는 그저 일을 하는 기계일 뿐이었다. 그들이 느낄 공포감과는 관계없이 그는 주어진 일을 수행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악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청계천 상인들이 상해를 입으며 했던 말들은 사람들이 어떤 것을 두려워하는지 보여주었다. 손을 잘리며 육체적 고통을 무서워했고, 그 육체적 고통보다 어머니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고통스러워했다. 엄마는 자신이 죽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을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했다.

강도는 별 거리낌 없이 채무자들의 팔을 자르고, 다리병신을 만들어 돈을 만들어왔다. 보통 나 같은 일반인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한들 그러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도는 나와 같은 일반인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30년간 살아오며 인간의 정을 느껴보지 못했으리라 추측된다. 그렇기 때문에 채무자들이 느낄 고통중 강도가 배려해주었던 부분은 입막음을 해주었던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가족들에게 추한모습을 보이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적어도 가족들이 없는 곳에서 알지 못하도록 배려하면서 상해를 입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조직폭력배들도 그들만의 룰을 지키며 싸우는 것처럼 말이다.

이강도는 일종의 장애인이었다. 사랑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감정을 모른 채 살아왔고 엄마가 그에게 자신이 받았던 고통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그에게 고통을 느끼는 방법을 알려주었어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복수를 위해 그녀는 강도에게 강간당하는 치욕까지 참아야 했다. 그녀는 가진 것이 있는 자만이 잃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강도가 지금껏 가져보지 못했던 행복을 선물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강도의 엄마가 되기로 했을 것이다. 그녀가 아들을 잃고 받은 고통은 강간당하면서 느꼈을 고통보다 심한 정신적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복수를 실행하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강도가 매일 밤 몽정을 하는 것은 그의 감추어진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는 동안만은 외로움에 사무쳐 누군가를 찾아다니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스윽 닦아버리고는 원래의 냉철한 사채업자 이강도로 돌아가 버린다. 의아했던 점은 엄마가 강도가 꿈을 꾸고 있을 때 그의 욕구를 푸는데 도와주었던 장면이다. 추측컨대 그녀가 그때 느꼈던 감정은 죽은 아들에 대한 연민을 강도에게 대입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연민은 강도가 엄마의 품에 잠들고 싶어 할 때 깨어졌고 강도는 이 사건을 통해 그녀의 존재에 더욱더 의존하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강도는 스스로의 고통을 해결할 방법으로 자살을 택했다. 그것이 그가 아는 한 가장 현명한 해결방법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강도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는 결국 엄마가 원했던 가장 큰 고통을 학습하고 말았다. 자신이 해왔던 행동이 어떤 상처를 주는지 알았기 때문에 절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죽음으로 용서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피가 길을 따라 자취를 남긴 것은 남은 자의 고통은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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